ghostbow_I

Sound-Text Archive. 


001.


  모든 것이 갖추어지지 않은 곳. 하지만 단어 하나하나, 시선 하나하나, 몸짓 하나하나가 그 이면들을 갖고 있는 곳.

로베르 브레송, 『시네마토그래프에 대한 단상』

contains samples from <당나귀 발타자르> 1966



002.


  어린 시절 나는 피아노를 쳤습니다. 바욘에 사는 고모가 피아노 선생님이었고, 그래서 음악적인 분위기 속에서 살았습니다. 그러나 더 이상 피아노를 연습하지 않은 후부터는 어떤 기술도 습득할 수 없었고, 또 속도도 낼 수 없었습니다. 다만 아주 일찍부터 악보 읽는 법을 배웠기 때문에 손가락이나 겨우 놀릴 수 있는 정도지요. 그래서 악보는 해독할 수 있지만, 연주는 할 줄 모릅니다. 그렇지만 이것은 진정한 아마추어 활동에는 걸맞는 것입니다. 아주 느린 속도와 가락이 맞지 않는 음을 통하여, 그래도 난 음악적 텍스트의 물질성에 도달합니다. 그것이 내 손가락으로 전해져 오기 때문이지요. 음악의 관능성은 순수하게 청각적인 것만은 아닌, 또한 근육질적인 것이기도 합니다.
  아마추어는 소비자가 아닙니다. 아마추어의 육체와 예술의 접촉은 아주 긴밀하며, 현존하는 것입니다. 바로 그 점이 아름다우며, 바로 거기에 미래가 있습니다. 그러나 우리는 여기서 또 한 번 문명의 문제로 넘어가게 됩니다. 기술의 발전과 대중문화의 발전은 연주자와 소비자의 분리를 끔찍할 정도로 심화시키고 있습니다. 우리 사회는 상투적인 것을 활용하는 -이런 말을 할 수 있다면- 소비 사회이지, 아마추어 사회는 전혀 아닙니다.
  역사는 일련의 돌발사건과 반동작용으로 이루어진 통계학자들에게는 친숙한 저 정상 분포 곡선으로 제시됩니다. 지배계급 가운데에도 진정한 아마추어 정신이 존재하던 그런 소외된 시대(군주제 사회나 봉건 사회 안에서조차도)가 있었습니다. 따라서 우리는 이런 아마추어 정신을 다른 사회성의 공간에서, <엘리트>가 아닌 다른 곳에서 되찾아야 합니다. 지금 우리는 이 곡선의 낮은 부분에 위치하고 있습니다.

롤랑 바르트, 『텍스트의 즐거움』



003.


“왜 그럴까 : 사람들을 껴안으면 입을 다물어.
생각하고 말하기 시작하면 껴안았던 팔을 풀지.
또는 더 안좋은 경우 : 사랑하는 두 사람이
서로 말을 나눠. 갑자기 그들은 이념을 더 이상 갖지
않아. 그리고 그들은 껴안아.

그러나 사랑과 정치가 결합하면, 그건 두 사람이
행동한다는 뜻이지 – 동시에

아니, 그렇지 않아. 사랑하는 두 사람은 말없이
껴안을 수 있고, 그것은 대화와 같아. 또는 두 사람이
멀리 떨어져서 말을 나누지. 그것은 껴안는 것과
같아.”

하룬 파로키 선집, 『우리는 무엇으로 사는가?』

contains samples from <꺼지지 않는 불꽃> 1969, <당신이 보는 대로> 1986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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